“나는 더러운 놈인데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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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의 마지막>
  
  의사로 보이는 분이 내게 보내준 짧은 댓글을 보고 하루 종일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그 의사분은 법정 스님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 본 것 같았다. 그는 법정스님의 모든 책을 소장하고 아껴 읽을 정도로 존경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막상 옆에서 죽음을 앞둔 그가 아프다고 의사를 닦달하면서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진 것을 보고 실망스러웠던 것 같다.
  
  인간이란 옆에서 보면 여러 가지 얼룩이 보이게 마련이다.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도 가까이 다가가 그 안에 들어가면 여러 쓰레기들이 보일 수도 있다. 그게 인간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 신학대학교로부터 강연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는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신학대학교의 강당에 있는 연단 위에 서게 됐다. 나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저는 사회의 때가 가득 묻고 몸 속에서 욕망이 끓어오르는 죄인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있는 삼손의 여인 데릴라같은 여자들 유혹을 견디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가 무릎을 꿇는 그런 인간이기도 합니다. 연단에 서 있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을 끝내고 나가면 나는 어둠 속에서 그늘 속에서 무슨 죄를 저지를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 이 연단 위에서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라고 말씀하시면 바로 돌아갈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단의 앞에는 신학대학장부터 시작해서 교수인 여러 목사들이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더러운 놈인데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내가 그들을 보면서 다시 확인했다. 그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빛 속에서 밝음 속에서 살아가는 은혜를 받은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변호사인 나는 어둠에서 태어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살다가 흔적도 없이 어둠 저쪽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삶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여러분과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제도적인 성직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무대의상을 입고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세상이 보는 겉모습과 자기만이 아는 내면의 모습이 다른 생활을 평생 해갈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기독교 총회의 회장과 임원들이 노래방에 가서 여자를 불러 놀고 이차로 인근 모텔에 간 사건이 교계를 시끄럽게 한 적이 있었다. 신문과 방송은 성직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는 그 사건의 변호사였다. 아름다운 꽃도 그 뿌리는 더러운 땅 속에 묻혀 있다. 사람들은 굳이 그 뿌리를 보이면서 손가락질을 한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위선의 껍질을 쓰고 사는 성직자들이었다. 오랜 시간 탈을 쓰고 살다 보면 그 탈이 자기인줄 착각하기도 했다. 천사처럼 보이는 자신과 스티븐슨의 소설에 나오는 지킬박사 같은 자기 사이에 어느 것이 그의 본 모습일까.
  
  고위성직에 있는 신부님의 변호를 한 적이 있었다.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그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였다. 억제된 욕망을 처리하지 못해 음난한 행위를 하고 다급하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들의 위선은 세상에서 생활하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못한 인격을 만들어 버렸다.
  
  불교의 최고직 승려들의 도박과 술 그리고 음란한 행위를 한 사건에 관여한 적이 있었다. 신같이 대접받는 그들을 마귀는 철저하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면서 검은 웃음을 웃고 있었다. 마귀는 그들을 교만하게 하고 남과 선을 긋고 잘난 척하게 했다. 마귀는 그들을 자기 자신이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로 착각하게 했다.
  
  성경 속의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당신이 메시아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간단히 대답했다. 만약 그가 그렇다고 했다면 상당한 고난을 겪었을 것 같다. 사도 바울이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자 그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신으로 대접하려고 했다. 바울은 옷을 찢으며 군중 속으로 들어가 ‘나도 인간에 불과하다’고 소리쳤다. 인간은 신이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욕망 덩어리의 먼지 같은 존재임을 항상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 2020-09-28, 20: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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