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만을 찾다 다이아몬드를 놓친 상인(商人)
“재판장님은 물에 빠진 그 여성의 진짜 남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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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저편에서 문득 기억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삼십대 말의 여성이 유서를 써놓고 한강 다리로 가서 검은 수면 위로 몸을 던졌다. 그 사이 두 남성의 행동이 극단적으로 비교가 됐다. 호적상의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한 증거를 잡기 위해 아내의 이메일을 뒤지고 있었다. 그 다른 남자는 한강의 구조대에 신고를 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한강 다리 위를 뛰어다니며 그녀를 찾았다. 마침내 그는 구조대에 의해 물에서 건져진 그녀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남편이 간통죄로 고소해서 그들은 법정에 피고인이 되어 섰다. 법을 공부한 변호사지만 호적이라는 서류에 남편으로 그 이름이 등재되었다고 꼭 그를 보호해 주어야 할까라는 깊은 의문을 가지게 됐다. 결혼생활의 본체는 사랑이라는 확신이 강하게 나의 가슴에 들어왔다. 법적 서류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알맹이가 중요하고 법률가들은 껍데기와 알맹이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법정에서 담당 판사에게 법적인 관점과는 다른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재판장님은 물에 빠진 그 여성의 진짜 남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짜 남편이라뇨? 여기 제출된 호적에 분명히 남편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게 논란의 전제가 될까요?”
  
  판사의 관점은 간단했다. 판사는 변호사가 별 시답지 않은 말을 꺼내고 있다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법정은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제품들처럼 기계적으로 처리되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나는 재판장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질문 형식으로 던졌다.
  
  “한 남자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성을 구하기 위해 한강다리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사랑한 것 같습니다. 그는 사회적 지위도 있고 앞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버릴 각오를 하고 그 여인을 살려냈습니다. 그 순간 법적인 남편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내가 죽는 걸 방치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나아가서는 살았더라도 이렇게 법정에 세우기 위해 아내의 이메일을 해킹하고 있었습니다. 이 법정은 결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라는 건 뭔지 그리고 법은 뭘 보호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메일 자료 자체로도 간통의 증명력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간통자와 상간자가 범죄사실을 자백했습니다. 범죄사실의 입증이 충분합니다. 법적으로 더 무엇이 필요할까요?”
  
  나는 판사와의 사이에 두껍고 높은 담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정에서 법적인 관점만 문제 삼다 보면 그 사건의 귀한 본질이 다 빠져나가는 걸 경험할 때가 많았다. 금은 다 흘러가 버리고 모래만 남는 셈이다. 다행인 것은 그 후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법이 그런 식으로 우매하게 간섭하지 말라는 취지인 것 같았다.
  
  인간의 시각은 참 단순하다. 라즈니쉬 철학에서 읽은 한 사례가 생각난다. 향료를 찾아다니는 상인에게 한 수도승이 어떤 골짜기로 내려가면 귀한 것들이 많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 그 상인은 힘들게 수도승이 알려준 골짜기 바닥으로 내려갔다. 물이 흐르는 동굴 같은 골짜기 아래서 그 상인은 실망했다. 향료 밭을 상상했던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어둠침침하고 거대한 벽에서 이따금씩 뭔가 반짝이는 게 보일 뿐이었다. 그가 다시 돌아가서 수도승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수도승은 향료상인이 보았던 돌 틈의 번쩍거리는 물체가 다이아몬드였다고 알려주었다. 향료만을 생각한 상인의 눈에 다이아몬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예화 속의 상인이 우리 세대의 나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어려서 법률가나 의사 또는 국회의원만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단순하게 세뇌된 적이 있었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눈가리개가 씌워지고 경주마 같이 뛰었다. 인생을 다 살고 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고 감명 깊은 소설을 만드는 예술인들이 다이아몬드 같이 훨씬 귀한 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었다.
  
  백 명의 인재가 한 가지 시각만으로 한 가지 인기직업만을 노리면 경쟁이 치열하고 아흔아홉 명의 패배자를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다른 관점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면 모두 성공자로서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기의 관점으로 본다. 내 관점은 다른 모든 관점을 빼앗아 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나의 관점은 내 눈을 가리는 맹점이 될 수도 있다. 눈을 들면 천장을 볼 수 있지만 바닥은 보지 못한다.
  
[ 2020-05-15, 16: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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