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변호사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엄청나게 큰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사건이 들어왔다. 단번에 백억이 넘는 큰 돈을 받는 부동산 소송이었다. 소송에서 이긴 그는 보수만큼 아파트 개발단지 주변의 노른자 땅을 받았다. 그 땅값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올랐다. 그 돈으로 친구는 여의도와 명동에 빌딩을 사들이고 금융회사를 인수했다. 그는 개인 변호사에서 재벌급 회장의 반열로 올라간 느낌이었다. 어느 날 만난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가 좋은 줄 알았는데 나는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 돈 오백만 원 벌려고 한 사건을 일 년 동안 매달리고 법정에 다녔는데 지금은 하루에 수십억씩 번다. 나는 지금 큰 회사를 사고판다. 지금 방송국 하나를 사려고 작업을 하고 있다.”

만화 같은 그의 눈부신 성공을 간장 종지 같은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법률서류를 써 주거나 법정을 드나들면서 품값을 받는 지식노동자였다. 그리고 십년쯤 세월이 흘렀다. 금융계에 있던 그를 아는 다른 친구가 내게 이런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친구 돈을 다 날리고 망했어. 이쪽이 투기판인 걸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 감옥까지 갈 뻔했다니까. 지금은 변두리 아파트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어.”

그는 갑자기 그런 돈벼락을 맞지 않았던 것이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사 사장을 지낸 고교 선배가 있다. 원래 부유한 집 아들인 그는 서울대를 나오고 기자가 되어 승승장구했다. 편집국장이 되고 사장이 되는 동안 그의 아내 역시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사업적 성공을 했다. 유명한 가구회사를 경영하면서 제주도부터 서울까지 호텔과 리조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부부는 이따금씩 부자들을 제주도로 불러 그의 목장에서 관리하는 말도 타고 개인 요트에서 파티도 열었다. 어려서부터 부잣집 아들딸로 큰 그 부부는 온유한 성품이었다. 교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모두들 그 부부를 좋아했다.

성경 속의 욥같이 어느 날 그들 부부에게 한 벤처 사업을 하는 젊은이가 다가왔다. 대단한 기술과 능력을 가진 청년사업가였다. 부부는 그 청년사업가를 적극 지원했다. 청년사업가는 그 부부에게 큰 이익을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게이트사건이 터졌다. 그 청년사업가가 정계 관계 법조계 등 곳곳에 뿌린 돈이 사회적 물의를 빚게 된 것이다. 연일 신문과 방송이 그 사건에 대해 떠들면서 게이트의 몸통이 누구인가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문사 사장이었던 그가 몸통으로 지목됐다. 그가 구속이 되고 아내의 사업이 파산을 했다. 그 부부의 날개없는 추락은 바닥이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그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주위에서는 우리 부부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는 눈치로 보고 있어. 지난날을 생각하면 허무해. 나는 기자 생활에 바빠서 제주도에 요트가 있어도 타보지를 못했어. 말이 네 필이나 있었는데도 탄 적이 없어. 바닷가의 내 호텔에서 자 본 적도 없고 말이야.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 건데 말이야. 어느새 팔십이 훌쩍 넘었네. 난 정말 억울해.”

그의 아픈 마음은 내 이해의 한계선을 넘었다. 나는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나의 의뢰인 중에 개인재산 일조 원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던 재벌 회장이 있었다. 학원 영어 강사로 자수성가한 그는 유명한 대학입시 학원을 만들고 다른 학원들을 인수해 가면서 학원 재벌이 됐다. 그의 야망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업에 손을 대고 마이더스의 황금처럼 번창했다. 그는 전국에 백화점을 만들고 쇼핑몰을 만들고 골프장과 리조트 사업을 벌였다. 재벌이 된 그의 회사조직 아래는 삼십만 명의 사람들이 그를 태양같이 받들고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꿈은 대권을 잡는 것까지 치솟아 올랐다. 어느 날부터 그는 권력의 타깃이 되었다. 그를 향한 수사의 물결이 쓰나미 같이 덮쳤다. 그는 파렴치한 죄인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는 파멸하고 감옥으로 들어가 오랜 세월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한 평의 어두운 감방에서 징역을 살 때 나는 남해에 떠 있는 그의 크루즈선을 법적으로 관리해 준 적이 있었다. 황혼이 젖어드는 크루즈선의 텅 빈 호화로운 방을 둘러보면서 나는 이런 말이 떠올랐다.

‘주님 보시기에 재산이란 내리쬐는 한 여름 태양 아래 아름답게 피어났던 꽃. 이제 그 꽃이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말라버리듯 부자의 생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아무리 바쁘게 뛰어다녀도 그것을 다 마치지 못하고 뒤에 남긴 채 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