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가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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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 둘 자연인으로 돌아오고 있다. 친구들 모임에 갔다가 법관 출신으로 로펌의 대표를 하던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수입인지를 어디서 사야지? 우체국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법원 안에 있는 은행으로 가야 하나?”
  
  그는 재판장으로 위엄을 가지고 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었다. 로펌을 지휘할 때는 많은 변호사와 직원들을 이끌었다. 기사가 항상 기다리고 있다가 공손하게 그를 차에 태우고 다녔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변호사 일을 그만뒀는데도 도와줘야 할 일들이 있는 거야. 전에는 아래 변호사가 가지고 오는 걸 검토만 했는데 이제 내가 직접 쓰고 서류에 붙일 수입인지 하나도 내가 내 돈으로 직접 사서 붙여주고 법원에 가서 접수까지 해 줘야 한다니까.”
  그는 진짜 남을 위해서 일을 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야 진짜 훌륭한 법조인이 되셨네. 우리 나이에는 돈과 상관없이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과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게 아닐까?”
  
  얼마 전 한 여성대법관 출신이 구청 민원실에서 봉사를 하다가 사람들한테 당신 같은 할머니가 법에 대해 뭘 아냐고 빈정거림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었었다. 법관 출신들이 낮은 자리로 내려와 재활용되는 것은 보기에 좋았다. 낮은 곳으로 내려와 봐야 가난한 사람들, 압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돌이켜 생각하면 처음 변호사 시절의 고생은 귀한 은혜였다.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초라하게 시작했다. 다른 변호사의 사무실 귀퉁이를 잠시 빌렸었다. 그때만 해도 전관예우라는 게 대단했다. 판사 출신 옆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의뢰인들이 줄을 섰다. 뒷 사무실에 있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전화 한 통으로 칠천만 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정치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거액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권위의식이 가득한 법관이나 검사에게 나는 어쩌면 귀찮게 구는 잡상인 비슷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도했었다. 너무 쪼들리면 하나님을 원망할 테니 그저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저녁이 되면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불을 끄고 기도했다.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 달라고.
  
  오랫동안 고시에 낙방했다. 마지막에는 합격만 시켜주면 평생 가난하더라도 감사할 테니 그렇게 해달라고 그분께 사정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아돌아가는 시간을 활용하느라고 국선 변호를 자청했었다. 돈은 안 되지만 바닥에서 사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사연을 많이 봤다. 나도 그들과 비슷한 바닥 출신이고 변호사라는 직업적 포장을 하고 있었지만 힘들었다. 저절로 공감이 가고 눈물이 났다. 틈틈이 조금씩 그들의 아픔과 꿈을 적어 보았다. 가족도 집도 없이 혼자 노숙자 합숙소에서 사는 노인은 강아지 한 마리를 자식같이 키우고 있었다. 구걸한 돈으로 우유를 사서 강아지에게 먹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어느 날 강아지를 잠시 맡겨 두었던 밥집 여자가 주걱으로 강아지를 때려 내쫓았다. 분노한 노인은 그 여자를 깨물었다가 상해죄로 기소된 걸 내가 변호하기도 했다. 그런 내용들이었다.
  
  낮아지니까 많은 것들이 보였다. 우연히 한 출판사에서 그 사연들을 모아 책을 내 주었다. 그 책을 읽거나 사 줄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출판사 직원이 내게 연락해 재고를 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탤런트나 사회명사들이 써야 그 이름을 보고 책은 팔리는 것 같았다. 더러 경험담을 말해 달라는 데도 있었다. 그런 요청이 있으면 가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힘든 인생인지 솔직히 말했다. 사람들은 남의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위안을 얻는 것 같았다. 내가 매일 기도하는 그분은 나를 아래로 아래로 바닥까지 내려가라고 하시는 것 같았다. 느린 강물같이 세월이 흐르면서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젊은 후배 변호사들이 나를 부른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이십대 말의 여성 변호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저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할 때 변호사님 테이프 듣고 했어요.”
  
  녹음테이프라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걸 만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초청받아 말을 할 때 그걸 녹음해서 돌려가며 들은 것 같았다. 또다른 변호사가 말했다.
  
  “제가 법원에서 실무수습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법원도서관에 ‘하나님 엄 변호삽니다’라는 책이 있더라구요. 실무수습을 하는 저희 사법 연수생들이 그걸 돌려보면서 앞으로 어떻게 법조인 생활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어요.”
  
  팔리지도 않고 대중의 흥미도 끌지 못한 책이 저절로 발이 달려 그곳으로 간 것 같았다. 신기했다. 교도소에서도 이따금씩 그 책을 읽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몇 년 전 법정에서 소송을 마치고 돌아올 때였다. 상대방 젊은 변호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버님이 목사이신데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 서가에 변호사님 책이 꽂혀 있는 걸 봤어요. 이렇게 직접 뵈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나의 가슴속에 안개 같은 기쁨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재주가 없어도 마음을 울림을 글로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 분은 힘들어하는 사람과 같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보라고 했다. 그 분은 돈이 아닌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보상을 해 주시는 것 같았다.
  
  
  
[ 2019-11-15, 08: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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