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돌이의 꿈
명분이 그럴 듯하다고 저절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쥐돌이는 꿈 많은 생쥐였습니다. 밤에만 꿈을 잘 꾸는 게 아니라 낮에도 꿈을 잘 꾸었습니다. 그가 들려 주는 꿈 이야기는 밤꿈과 낮꿈이 다른데, 밤꿈 이야기는 다른 생쥐들과 비슷비슷해서 다른 쥐들이 잘 듣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고양이를 혼냈다든지, 고양이를 잡아 먹었다든지, 사람을 물었다든지, 사람을 잡아 먹었다든지, 개를 놀렸다든지, 개를 잡아 먹었다든지, 이런 따위는 다들 한두 번은 꾸는 꿈. 구태여 쥐돌이한테 들을 것 없었지요. 다른 생쥐들한테도 들을 것 없었지요. 그냥 자면 저절로 꿈에 나타나는 신나는 연속극이었니까요.
  
   쥐돌이는 공부를 좋아해서 특히 도덕 공부를 좋아해서 공자, 맹자, 퇴계, 원효, 칸트, 바울 소리만 들리면 아무 일도 않고 쌀 한 톨 먹지도 않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었답니다. 찍 소리도 않고 말입니다.
  
   마침내 쥐돌이는 무리를 모아 쥐답게 사는 게 뭔가에 대해, 눈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내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생쥐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재미 반 듣다가 마침내 젊은 생쥐들을 중심으로 그의 꿈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말만 하면 아무 소용없어. 알았으면 행해야 하느니라. 우리 생쥐의 제일 나쁜 버릇은, 수백만 년 악습은 남이 애써 사냥해 놓은 것, 농사지은 것을 훔쳐 먹는 일이다. 가장 고귀한 존재, 즉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천신만고 끝에 생산한 것을 훔쳐 먹다니, 이건 말이 안 된다. 쥐의 양심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것부터 고치자. 찍찍!'
   '고치자! 찍! 고치자! 찍찍찍!'
  
   처음에는 어른 생쥐들이 똑똑한 생쥐가 태어났다고 천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하는 천재가 나타났다고 대견해 하다가 드디어 이런 일이 벌어지자, 난리가 났습니다. 당장 어떻게 먹고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내 생명을 위해서 남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양식을 훔쳐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우리도 사냥하고 농사짓자! 찍찍!'
  '만세, 쥐돌이 만세! 찍찍찍! 천재 쥐돌이 만세! 찍찍찍! 성서(Holy Mouse) 쥐돌이 만세! 찍찍찍!'
  
   마침내 쥐돌이의 뜻에 동조하는 젊은 생쥐들을 중심으로 생쥐 세계에서 혁명의 회오리가 불었습니다. 쥐돌이의 부모와 쥐돌이 제자들의 부모를 중심으로 쥐돌이의 거룩한 도덕 혁명에 가담하는 생쥐들이 홍수에 시냇가에 물이 불어나듯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생쥐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습니다. 마침내 같은 생쥐끼리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쥐돌이가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젊은 생쥐들의 힘과 쥐돌이의 명 연설, 쥐돌이의 기막힌 전략과 전술로 마침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승리를 즐길 겨를도 없이 승리 후에 금방 심각한 문제에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간 쌓아두었던 양식이 다 떨어졌던 것입니다. 전쟁 중이라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해서 비록 훔친 양식이었지만 쥐돌이 군사들도 적들의 양식을 빼앗아 먹었지만, 훔쳐 오던 생쥐들이 다 죽게 되자 금방 먹을 것이 없어졌습니다.
  
   모두들 천재 쥐돌이, 어느새 황제가 된 쥐돌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자, 농사를 지으러 가자. 지금은 겨울, 우선 사냥을 떠나자. 나를 따르라. 찍찍!'
   눈 덮인 산으로 들로 아무리 쏴돌아다녀도 생쥐에게 잡혀 주는 곤충은 단 한 마리도 없었고 나무에 달린 열매도 한 개도 없었습니다.
  
   드디어 같은 편 생쥐들끼리 싸움이 붙었습니다. 먼저 쥐돌이부터 잡아 죽여서 뜯어 먹고 그 주위의 생쥐들도 잡아 죽여서 뜯어 먹었습니다. 그리곤 각자 헤어졌습니다. 일제히 인간의 양식을 훔쳐 먹으러 갔습니다. 찍찍찍, 찍찍찍!
  
  속말: 명분이 그럴 듯하다고 저절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명분 자체도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지는 한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2000. 8. 4.)
  
[ 2006-08-21, 21: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