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이 동족에게 못할 짓을 지독히 하고서도 청산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어느 나라나 있는 비속어 정도를 인종차별이라 걱정하고 있다. 《짱깨·흑형·개슬람…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돌아보라》이는 오늘 조선일보의 한 기사 제목인데 어떤 교수가 쓴 책에서 인용했다는 글이다. 짱깨·흑형·개슬람 수준의 비속어는 사람이 말을 하고 사는 나라에서는 어디나 다 있다. 구체적 예시를 들 것도 없이 비속어나 욕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러한데 겨우 저 정도를 갖고 우리가 무슨 대단한 인종차별이나 하는 국가이기나 한 것처럼 말한 것은, 스스로 우리 얼굴에 침 뱉는 짓이자 우리 자신을 기죽이는 일에 더 아니다.

우리는 과거나 현재나 인종차별을 해 본 적이 없다. 인종차별적 측면에서는 그리 설움을 받아 본 적도 없다. 그러므로 인종차별이란 말에 과민반응할 것도 아니고 인종차별이란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일 것도 아니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흑인을 잡아와서 노예로 부린 과거사가 있는 국가에서는 자기들 잘못 때문에라도 과민반응을 하는 것이고, 인종차별자를 몹쓸 사람 취급하는 것이며 나아가 인종차별을 안 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을 해 본 적도 없는 우리가 남 따라 장에 가듯 인종차별에 화들짝 놀라는 것은 하지도 않은 잘못을 뉘우치는 것과 같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물론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되지만 우리는 인종차별보다 더 독한 동족차별을 하고 살아왔지 않은가. 지금도 그 자취를 가문 자랑으로 여기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동족차별을 한 것을 꾸짖지도 않으면서 짱깨·흑형·개슬람은 인종차별이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족차별을 묵인하는 처사가 아니라 하겠나. 조선시대 전 인구의 40% 정도가 노비였고 많게는 60%가 넘기도 했다. 노비의 수효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양반이 자기 노비를 때려죽여도 괜찮았던 제도가 더 문제였던 것이다. 서양이 인종차별에 대해 뉘우치듯 우리가 양반의 횡포를 뉘우친 적이 있었던가. 도리어 지금도 자기 집안은 양반 집안이라고 자랑하지 않는가. 이러면서 “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돌아보라”니? 차라리 양반 가문임을 자랑하지 말라고 말해 줄 일이다.

지금 집집마다 ‘족보’가 없는 집은 없다. 하다못해 ‘가첩’이라도 갖고 있다 그리고 족보를 사람이 자는 머리맡에 고이 모시거나 장롱 위에 높다랗게 올려놓고 거룩히 모시며 산다. 양반 가문이었음을 자랑하는 이것이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자세인가? 듣기 싫은 말이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도는 족보는 거의 다 가짜다. 가짜를 만들어서까지 양반 가문임을 내세우려는 거기에는 동족차별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러면서 짱깨·흑형·개슬람이란 말을 인종차별이라 탓한 것은 인간계에서 욕을 없애자는 주장과 같이 공허한 목소리일 뿐이다.

비록 서양이 인종차별을 하긴 했으나 대체로 양반이 노비를 대하듯 그렇게 모질게 하지는 않았다.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라는 그리스 역사책을 보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대목이 나온다. 전쟁 포로로 잡혀 온 사람을 노예로 쓰기 위해 시장에서 사서는, 주인이 노예와 함께 나란히 밭을 갈고 있는 장면이다. 우리는 어떤가? 김홍도의 그림〈타작〉이 말해 주듯이, 우리는 노비가 추수를 할 때, 양반은 장죽을 물고 돗자리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노비의 고통과 땀을 구경하고 있잖은가. 주인과 노예가 똑같이 밭일을 하던 저런 나라는 인종차별을 뉘우치고 있다. 노비를 누워서 부려 먹던 우리나라도 뉘우쳤는가? 이 뉘우침도 없으면서 이보다 못한 ‘인종차별’을 걱정하는 꼴이라니.

구약성경도 자기 소유의 종들에게 7년에 1년은 쉬게 해주어야 한다는 안식년 규정을 두었다. 종들만 쉬게 한 것이 아니라 집짐승에게도 쉬게 하였고 논밭도 쉬게 하였다. 우리도 그랬던가? 중국조차도 이미 송나라 때 노비제도를 혁파했다. 이것을 저들은 동양의 르네상스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종 이전에는 없던 노비종모법(奴婢從母法)까지 만들어 시행했다. 그리고 노비 한 명의 몸값이 돼지 한 마리의 가격보다 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런 짓을 하고서도 지금, 양반의 후손입네 하며 거들먹거리고들 살지 않는가. 이런 것들은 치우지도 못하면서 “짱깨·흑형·개슬람…우리 안의 인종차별을 돌아보라”고 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겉멋이다.

양반이 동족에게 못할 짓을 지독히 하고서도 청산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어느 나라나 있는 비속어(짱깨·흑형·개슬람) 정도를 인종차별이라 걱정하고 있다. 착한 사람인 척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지나치면 남들이 어떻다 말하겠는가. 채근담도 혼자서만 너무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잖은가. '땅이 더러운 곳에는 초목이 무성해지고,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느니라. 고로 군자는 때 묻고 더러운 것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져야 하고, 깨끗한 것만 즐기며 혼자서만 행하려는 절조는 갖지 말지니라.'

짱깨·흑형·개슬람이란 단어가 인종차별이라니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인이 들으면 한국은 국민의 도덕 수준이 천사급이라 하겠다. 아니면 우리나라는 저런 것을 인종차별이라 말할 만큼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이 된다. 내 나라에서 짱개를 짱개라 말하지 못하고, 흑형을 흑형이라 이르지 못한다면 그게 어디 주권국가라 하겠는가. 짱개나 흑형이 듣는 데서 짱개니 흑형이라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끼리 나누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국민 기상을 꺾는 일이다 .국민을 그만 기죽여라.

우리의 한낱 비속어를 인종차별에 갖다 대버리면 그러는 당사자는 거룩한 사람으로 돋보이거나 남모르는 박애정신이나 가진 듯이 보이게 된다. 하지만 국가와 국민은 어떤 대접을 받게 되겠는가. 국가의 위신이 걸린 문제에서는 삼가고 두려워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