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보낸 대북특사(對北特使)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일행이 김정은을 만나고 무사히 돌아왔다. 김정은은 우리 특사를 만나 ‘핵실험시설 폐기 등 비핵화 약속을 실행하고 있으니 이에 상응하는 대가(代價)를 미국이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고 정의용 실장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용도 폐기된 쓸모없는 핵실험 시설을 폐기하고도 생색내고 있는 김정은의 파렴치한 언동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썩은 말(馬)고기를 팔아먹고 있다”고 혹평했다.

김정은의 염치없는 요구를 대변한 정의용 특사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경남 거창군 위천면 대정리 수승대(搜勝臺)의 기구한 역사적 운명이다. 수승대는 원래 명칭이 수송대(愁送臺)였다. 거창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백제 쪽 영토였다. 국운(國運)이 쇠약해진 백제가 금은보화 등 조공(朝貢)을 마련하여 신라로 사신(使臣)을 보낼 때 거창의 절경인 오늘의 수승대에서 송별연을 베풀고 무사귀한을 간절히 기원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그래서 무사귀한을 근심걱정[愁·근심 수]하며 사신을 보냈다고[送·보낼 송]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조 성리학자 퇴계 이황이 수송대의 의미가 좋지 않다고 하여 오늘의 수승대(搜勝臺)로 개명(改名)하였다고 현지 문화 해설사는 설명했다.

김정은에게 쩔쩔 매는 문재인 정부의 형국이 쇠약해진 백제의 데자뷔(Dejavu) 같아 보인다. 김정은의 뻔뻔스러움과 사기행각에 이용당하고 있는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다. 특사를 보내면서 ‘김정은이 만나줄 것인가 아닌가’ 안절부절하는 청와대의 모습도 그렇고, 무사히 돌아 와서 김정은의 상투적 X수작을 그대로 전달하는 정의용의 모습 또한 백제 사신의 불안과 초조함이 시공(時空)을 건너 뛰어 오늘에 재현되는 듯한 우울한 심정이다.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만나 주지 않고 정의용 특사 일행은 만나주면서 김정은이 받은 현대판 조공이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많다. 줄 것이 없으면 오지 말라고 한 김영철의 편지가 그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