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인사들에게도 국가예산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시끄러운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중심인물 3인방(김기춘, 조윤선, 유진룡) 가운데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있다. 유진룡은 문화계 인사들 가운데 반체제적 활동을 하거나 반정부적인 인사에 대한 리스트를 만든 장본인이 김기춘, 조윤선이었다고 지목하고 그들이 만든 리스트를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라고 폭로했다. 유진룡의 폭로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유동렬 의원은 문제의 리스트는 이미 신문에 보도된 문화계 인사들의 성향분석자료를 취합한 정도로 외부에 공표된 것도 아닌 업무차원의 실무자료인 것 같다는 주장을 한바 있다.

그러나 유진룡은 특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부정부패는 어느 정권이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블랙리스트 문제는 헌법 가치를 조직적으로 훼손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신 이후 전두환 시대까지 블랙리스트 명단 관리가 있었다가 민주화되면서 없어졌는데 부활됐다. 대한민국 역사를 30년 돌려놨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6면 보도 인용).

유진룡의 이 같은 주장만 들으면 유진룡은 마치 정의의 투사이고 강직한 청백리처럼 보인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2회에 합격하여 5급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그는 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잔뼈가 굵은 전통 관료출신이다. 기획관리실장(1급)까지는 승승장구했지만 차관, 장관 등 정무직 공직자가 되고 나서는 순탄하지 못했다. 청와대와 자주 충돌하고 불협화음을 내며 트러블메이커라는 이미지가 붙어 다녔다.

2006년 1월 노무현 정부의 문체부 차관에 임명된 뒤 6개월 만에 청와대와 의견충돌로 차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유진룡은 청와대의 부당한 인사문제개입에 불응하여 쫓겨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으나 담당비서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 Y비서관이 유진룡을 보고 “배 째드릴까요?”라는 표현을 했다고 해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유진룡이 좌파정권에서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해서 2013년 2월 문체부 장관으로 발탁, 임명했다. 그러나 2014년 7월 유진룡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사퇴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뒤 유진룡이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폭로함으로써 역시 청와대와의 마찰로 인해 물러났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리고 지금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장관을 구속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유진룡에게 묻는다. 유진룡이 그렇게 당당하고 정의롭다면 노무현, 박근혜 두 정권에서 박해를 받고도 왜 즉각 양심선언을 해서 권력의 부당한 행사를 만천하에 고발하지 않고 은근히 자리를 유지하려 하다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는가? 그리고 권력의 힘이 약해지니까 그 틈을 타 이제 와서야 비굴하게 정의의 사도인 것처럼 행세하는가? 유진룡의 주장대로 민주화 이전 역대 정권은 부정부패했고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면 그 당시 근무했던 동료나 선배 공직자는 모두 부역자였고 부패했으며 유진룡 혼자만 깨끗했다는 것인가? 유진룡은 동조하지 않았는가? 유진룡의 그릇이 장·차관은 못 된다는 것인가?

유진룡의 결정적 증언으로 비록 구속은 되었지만 김기춘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만약 있다면 “반체제 반정부 운동을 하는 자들에게 왜 국가세금을 지원해줘야 하며 그들은 왜 대한민국의 온갖 혜택을 받아가며 그런 짓을 하는가?”라고 특검에서 반문했다는 보도를 읽고 있는가? 유진룡은 반체제 인사들에게도 국가예산을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