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국장급 공무원이 기자들과 만나 사적(私的)인 저녁식사 자리에서 폭탄주 8잔(盞)과 소주 11잔 등을 마시고 술 취한 상태에서 한 '민중, 개, 돼지' 발언이 화근(禍根)이 되어 파직(破職)됐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는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그게 무슨 말이냐?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말썽이 되자 그는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 출석, “술이 취한 상태에서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에 나오는 한 구절(句節)을 인용해서 말했을 뿐”이라고 밝히고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했다며 공개 사과했다. 그래도 파장이 커지자 그는 설화(舌禍)로 인해 무거운 징계를 받고 공직에서 물러났다.

한 공직자의 불행한 발언의 진원지는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대선(大選)과정에서 권력과 재벌의 유착, 그리고 비자금을 폭로하려다 실패하고 보복당한 뒤 복수심에 불타는 정치깡패와 정치판 설계자로 활동한 언론인 등의 관계를 다룬 범죄영화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작가 윤태호가 썼고 감독은 우민호다. 윤태호는 시나리오에서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 뭐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을 쓰고 계십니까?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 같은 대사를 ‘내부자들’에서 커다란 힘을 자랑하는 일간신문의 논설주간이며 정치판 설계사를 자임하는 극중 인물 이강희(배우 백윤식)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내뱉게 한 것이다.

이 영화가 인기리에 700여 만이 관람하면서 상영되고 있을 때 '대중 개돼지론'에 대해 어떤 신문이나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시비를 걸거나 공론화 시킨 사실이 없다. 그렇다면 작가 윤태호나 감독 우민호, 배우 백윤식은 대중을 개돼지라고 발언해도 괜찮고 국장급 공무원이 사석에서 기자들과 어울려서 술 마시면서 취중에 패러디한 발언은 어째서 정치문제화되고 파직당하는 가혹한 형벌을 받아야만 했던가? 영화이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은 것인가? 아니면 특정부류의 기호에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문제 삼지 않은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민중(民衆)은 일반적으로 피지배계급으로서의 대중을 가리킨다고 했다. 역사를 창조해 왔지만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지배층에 의해서 억압되어 온 사람들을 민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특수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자신의 억압되고 훼손된 삶을 극복하고자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민중으로 보는 시각(視角)까지 의미 해석이 다양하다. 그러나 민중은 새로운 변화의 잠재력을 간직하고 있으며 억압받을지언정 억압하지는 않는 무보복, 비폭력의 순결성(純潔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중의 행동은 인식과 생각, 실행, 회고의 단계를 거쳐 신중하게 발현된다. 이러한 네 단계 과정이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오염된 생각에 의해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민중존재의 정당성은 잃게될 것이다. 민중이 정당성과 분별성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들은 오합지졸(烏合之卒)이나 다름없을 것이요, 민중이나 대중이란 어휘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중의 행동은 당위성과 분별성, 정의감 등에 기초한 응집력의 결과물로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크게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민중이 오염되지 않은 대의명분에 살고 정정당당하게 행동한다면 ‘민중 개돼지론’같은 듣기 거북한 표현자체가 등장되지 않을 것이다.

민중의 기본 개체는 사람이요 인간이다. 예부터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덕목(德目)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자들을 일컬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질타했다. 짐승만도 못한 자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륜도덕을 저버리고 패륜적 행동을 하거나 민중의 이름을 내세워 공동체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이적행위자(利敵行爲者), 그리고  불량 정치세력들이 복지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경제를 거덜내고자 하는 자들, 특히 국가안위(國家安衛)를 위태롭게 하는 자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짐승만도 못한 자들의 범주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있다. ‘민중’이란 위선의 탈을 쓴 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지 않고 스위스 국민들처럼 확실하게 반대하는 현명함을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민중들이 보여줘야 할 모범적 자세일 것이다.

민중들이 단합된 힘을 한 곳으로 모아서 총궐기한 예를 우리는 3·1운동과 6·25 북괴남침 때 확인한 바 있다. 3·1독립선언서에서 2000만 민중(民衆)의 성충(誠忠)을 모아 독립의 의지(意志)를 세계 만방에 소리 높여 외친 바 있고 백척간두에 서있던 조국을 단합된 민중의 힘으로 구해낸 바도 있다. 요즘은 민중이나 대중의 이름을 사칭(詐稱)하거나 도용(盜用)하는 불순한 패거리와 부류들이 너무도 많다. 진정한 의미의 민중은 개돼지 같다는 민중폄하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현명하고 슬기롭고 순수한 민중은 절대로 개돼지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해서도 안 된다.

*본 칼럼은 필자가 조갑제닷컴에 올린 400번째의 글이다.
그동안 필자의 졸문을 읽으며 격려와 비판을 보내 준 네티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