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는 너무 못 먹어 죽는다. 남한에서는 너무 잘 먹어 죽는다. <남북한 음식과 죽음>

1969년이라고 기억된다. 북한에서 가장 잘 살았던 때이다. 아무리 잘 살아도 닭고기를 먹어본다는 것은 희귀했다. 사람 먹을 식량이 빠듯하니 닭 먹일 사료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농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절은 북한에서 가장 풍요했다. 다음해인 1970년 이후부터 이런 시기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당연히 귀한 닭은 부리에 고추를 물린 잔치상에 대표적 장식물이었다. 이렇게 너무 귀하니 누가 먹어야 할지 고민으로 손을 못 댄다. 냉장고가 없는 북한이기에, 아니 있다고 해도 전기가 부족하니 소용없다. 이런 조건에서 신주단지로 건사한 닭이 그만 쉬어 버렸다. 버리긴 너무 아깝고 어쩔 줄을 모른다. 고기가 쉰 것은 끓여도 식중독에 걸린다. 끓이면 세균은 죽지만 독성 물질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는 소다로 중화시켜 먹어야 하나 농촌에서 이런 상식이 없다.

버려야만 할 때 너무 아까워 증조 외할머니가 잡수셨다. 틀림없이 배탈이 났다. 심한 설사로 탈수증이 겹쳐진다. 링게르만 맞아도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읍 병원까지 가려면 하루 종일 달구지 타고 가야 하니 감감하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이젠 그만 사셨으니 돌아가시라는 것인지 외할아버지(서희성)는 모친 되신 증조 외할머니를 방치를 하신다.

흙벽에 흙먼지 날리는 맨 윗방에 멍석 깔고 누워계신 증조 할머니. 제가 외가에 놀려오면 항상 <민벡이 왔냐> 하며 가장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렇게 반가워하시더니 앓던 이때는 그냥 쳐다만 보신다. 냄새나는 윗 방에 내가 올 것을 바라지도 않는지 아무 말 없으신다. 그 착한 이모님(서경희, 서경녀)들도 애처롭게 바라만 본다. 70대 나이에도 밤나무를 타셔 소문나게 정정하시던 외증조할머니시다. 하지만 보름 만에 그렇게 돌아가셨다. 쉰 닭고기만 안 드셔도 한 30년을 더 사셨을 만큼 건강하셨는데. 실제로 그 형제 분들은 열악한 북한에서도 90세 이상 사셨다.

탈북하여 남한에 와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에 살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파트가 많은 곳이라 한다. 우리 목화아파트는 탈북인들이 많이 배치되어 산다. 한 아파트에 이성현이란 안전원(경찰) 출신 탈북자가 있었다. 북한 사람 치고 체격도 크고 서슬서글한 인상에 성격도 참 좋았다. 안기부 산하 연구원으로 있다가 노래를 잘 해 가무단으로 활동했다. 고기를 참 좋아했다. 어느 날 대장암으로 돌아갔다.

염정산이란 탈북자가 있었다. 탈북자동지회 계시판의 저의 댓글을 참 공감하며 형님이라고 따르던 친구이다. 북한에 있을 때 아버지가 장군이었는데 숙청되어 추방되었다. 추방자라고 갖은 모욕과 멸시를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탈북했다.

술을 참 좋아했다. 김정일 호위병이었던 이영국 씨와 염정산이 저의 농막에 와서 조개를 삶아 놓고 술을 마신다. 점심에 먹고 마시는 술자리는 저녁까지 이어진다. 나는 워낙 술을 못 하니 엉뎅이가 쑤셔 밭 일하며 지켜만 보았다. 나라면 물을 마셔도 다 먹을 수 없는 양의 술을 그들은 물보다 더 마시는 것 같았다. 참 주력이 대단한 건강체들이다. 봄에 왔던 그였는데 가을 쯤 되어 전화가 왔다. <형님! 나 간암 말기데!> 그를 데리고 여기저기 가 보았으나 간암 말기로 손을 못 댄다. 너무나 잘 생기고 성격이 좋던 염정산은 그렇게 갔다. 2004년도 얘기이다.

안선국이란 탈북자가 있었다. 1996년경 두 가족을 태우고 서해안으로 탈북한 분이다. 머리가 참 좋았다. 말도 참 잘했다. 저렇게 똑똑한 탈북자도 있나 할 정도였다. 그를 통해서 북한에서 대량 아사 참상을 실감있게 들어 확신하였다.

그는 서울에서 <압록강 2천리>란 식당을 크게 냈다. 북한에서 나름대로 난다긴다 하는 사업가이다. 하지만 남한의 수준에 비하니 어린아이였다. 좀 있다 아이엠에프(IMF)가 닥쳐와 설상가상이다. 식당에서 24시간 먹고 자도 경영난은 여전하다. 어느날 저녁 찾아가 보니 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또 한 해가 지나자 비보가 날아 왔다.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너무 못 먹어 죽는다. 남한에서는 너무 잘 먹어 죽는다. 죽음을 놓고 비정한 평가이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일까.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잘 먹고 죽은 이는 때깔도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