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험난한 시국을 애타는 조바심으로 지켜 보는 국민들에게 국난극복의 힘이 되고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형극(荊棘)의 시인, 한하운의 '슬픈 반세기'를 소개한다.

시인(詩人) 한하운(韓何雲)은 함경도 함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리 농림학교'와 일본 세이케이고등학교, 북경대학교 농학부를 수학했다. 한하운은 한국 근대시 100년이 배출한 시인이자 가장 불행한 일생을 병마에 시달리며 살다 간 극기(克己)의 시인이기도 하다.

한하운은 예상치 못한 한센병 환자의 길을 걸었다. 치료차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와 북경(北京), 소록도 등지를 유랑하며 재생의 가시밭길을 걷기도 했다. 1945년 함경남도 도청 축산과 재직중 한센병 악화로 관직을 그만두고 서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1946년 함흥 학생데모사건 혐의를 받아 체포되기도 했다. 그 뒤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1948년 월남했다.

한하운은 월남하여 수원 농촌진흥원에서 공직생활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간첩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무혐의로 풀려나는 고초(苦楚)를 겪기도 했다. 말년에는 한센병이 치유돼 고아원도 운영하고 대한한센병 환자협의회 회장도 하며 사회활동도 했다.

1975년 인천에서 간암으로 서거했다. 김포군 장릉공원 묘원에 산소가 있다. 한하운 문학관과 시비(詩碑) '보리피리'도 있다. 한국시 100년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배출됐지만 한 하운처럼 불행한 일생을 살다가 간 시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와 '한하운 시초' 등 작품집은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이를 두고 세인들은 '인거유작(人去遺作)'이라고 한다. 詩 '전라도길' '보리피리' '비 오는길' '파랑새' 등은 아직도 많은 독자들이 애송(愛誦)하고 있다. 한하운이 남긴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전라도길-소록도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비 오는 길>

주막(酒幕)도 비를 맞네
가는 나그네

빗길을 갈까
쉬어서 갈까

무슨 길 바삐 바삐
가는 나그네

쉬어 갈 줄 모르랴
한 잔 술을 모르랴

오늘의 이 험난한 시국을 지켜보며 가슴 조아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고난의 역경을 이기고 살다 간 韓何雲이 남기고 간 시편(詩篇)이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